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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 劉氏 族譜 이야기-나는 강릉 유가 이다!

청산처럼 2009. 1. 19. 11:18

江陵 劉氏 族譜 이야기

 

 

나는 강릉 유가 이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장손 집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자랐을 뿐 그다지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난 장자도 아니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께서 장손 집 며느리의 애환을 신파 곡처럼 들려주실 때에는 어머니가 정말 고생하셨구나 쯤으로 들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는 장자는 아니셨지만 큰아버지께서 독신이셨으므로 어머니는 자동 큰 며느리셨으며 나의 형님께선 큰아버지께 양자로 들여져 장자의 대를 이으시니 대대로 이어지는 宗家의 장자로써 무거운 짐을 또는 한 문중의 대표로써의 중압감등을 타의에 의해서 운명적으로 건너 받게 되셨다.

 

어찌 보면 자랑스러운 일 일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대에는 정말 무거운 짐이 안일 수 없다. 집안 제사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 문중 시제로 넘어가기 전에는 시시때때로 지내는 제사는 다달이 있었고 이 또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보통 일은 안이다. 여기에 아직도 작은 아버님이 세분 계시지만 문중에 일어나는 많은 대소사는 모두가 형님의 의견을 물어 진행이 되니 참으로 오지랖 넓은 일이 종가의 장손이 안인가 생각된다.

 

족보이야기에 서론이 너무 길어 졌는데 본론은 이런 종가의 장자인 형님께선 그 동안 족보가 없으셨다. 사연인즉 역시 어려웠던 집안형편과 복잡한 집안 내력이 연관되니 중략하고,

장자인 형님으로써는 문중 일에 참여하시며 여러 일에 있어 족보를 봐야 할 일이 간혹 발생될 때마다 거꾸로 대동보를 갖고 있는 당숙께 여쭤 보시거나 혹은 사정을 하여 족보동냥을 해야만 하셨다. 그래도 나름 정보 수집을 잘 하셔서 우리 문중의 족보체계는 훤히 알고 계셨지 만은 서책으로 보는 것 보다는 그 신빙성이 부족하니 족보의 필요성을 체감하시어 족보에 대한 아쉬움이 남달랐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 또한 아쉬워하던 차에 동네친구이자 군대 후배인 절친한 김 훈 선생이 그의 형님과 함께 운영하고 계신 한국족보편찬위원회(http://www.allkorean.co.kr)의 고마운 도움을 받아 보기에도 근사하고 정성이 가득 담긴 경력공파보를 갖게 되었다.

 

어제는 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하여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함께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형님께 드리니 너무나 기뻐하시고 어머니 또한 내심 마음을 쓰셨다고 하시어 나 스스로 참으로 보람되게 생각하였다. 사실 나는 그간 족보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아버님 살아생전이나 형님께서 간혹 족보이야기를 하실 때면 내일이 안인 듯 그냥 여벌로 들어 넘기고 하였지만 이렇듯 족보 한 권에 깊은 마음이 있는 줄 몰랐다. 宗家의 장손으로서 형님이 대하시는 족보와 한발 뒤에서 내가보는 족보의 개념차이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나도 이제야 내가 나의 가문의 정보에 대하여 전달해야 하는 자손이 있다는 것을 깨 닳고 어젯밤 집으로 돌아와 나의 아이에게 보여주며 설명해야 할 족보를 읽어보며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내 아이를 포함한 요즘 세대들 중 대다수는 한번도 족보를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런 것들에 대하여 고리타분한 격식이라 치부하고 등한시하겠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존재가치를 돌아볼 때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家譜인 족보가 안인가 생각된다. 또한 일상에 도움되는 것이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여러 갈래로 파생된 어떤 문헌들의 옛 고서적들은 그 작성방법이 족보의 나열체계를 따라 만들어 져있어 자세히 탐독하기 위해서는 족보 보는 방법을 익혀두는 것이 아주 도움이 많이 되므로 가정에 어떤 종류이건 족보 하나 정도는 장만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 예로 예전에 내가 백두대간 이라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맥을 알아보기 위하여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를 탐독한적이 있는데 이때 이 고서적을 보는 방법을 몰라 무던히도 헤맸던 일이 있었다. 고생하여 다 읽어는 보았지만 미리 족보에 대하여 알고 있었고 볼 줄을 알았다면 아마도 쉽게 볼 수 있었으리라!

 

우리 꼼꼼한 선조들의 메모기술이 집약된 족보야말로 복잡한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메모기술과 접목을 시킨다면 그냥 무심코 흘려버릴 고리타분한 격식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기술 이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친구의 연주회와 더불어 보내고 돌아와 어제에 이어 새 족보를 탐독해서 내일은 승호를 앞에 앉혀놓고 강릉유가 경력공파에 대하여 일장연설로 설파를 해야겠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한국족보편찬위원회(http://www.allkorean.co.kr)와 김훈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2008년 10월 31일 -청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