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능선종주
l 고 스 락 : 천왕봉(1915m)
l 등산코스 : 화엄사-노고단-반야봉-삼각봉-덕평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
연하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법계사-중산리
l 교 통 편 : 성남-전주(고속) 전주-구례(기차) 구례-화엄사(시내버스)
중산리-진주-서울-성남.
l 산행후기 :
그 동안 벼르고 있던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할 좋은 기회가 왔다. 월요일을 하루 건너뛰고 추석연휴가 이어져 회사에서 일요일부터 5일간의 긴 휴가를 주었다. 여기에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면 지리산을 3박4일간 다녀와도 다음날이 추석이니 집에서도 막을 이유가 없다. 이번 산행은 나의 연인인 “미숙”이 와 동행하기로 했다. “이 미숙” 평범한 사내보다 산을 더 잘 타는 그런 여자다.
미숙은 공무원 이므로 월요일은 휴가를 제출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출발 당일 들뜬 마음에 회사에서 퇴근하니 미숙은 벌써 집에 와서 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있었다. 전날 소풍 가는 아이처럼 미리 챙겨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2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전주가는 고속버스표는 미리 예매했으므로 우리는 수월하게 전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주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구례행 직행버스가 이미 떠나버린 상태였다. 생각외로 구례행 직행버스는 막차가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창구직원이 전주역으로 가보라고 알려줘 택시를 잡아타고 전주역에 도착하니 20:35분 기차가 있었다. 안도의 숨을 쉬고 미숙을 보니 그도 나와 같이 웃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입석 이였지만 엉덩이 두개 붙일만한 공간은 넉넉하였다.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22:00분 구례구역은 구례시가지에 있는 것이 않이라 시내 외각에 있어 우리는 또다시 예정에 없는 택시 비를 써야 했다. 이미 버스는 없고 구례역 앞에서 구례! 구례 하는 기사아저씨의 목소리에 이끌려 화엄사까지 쉽게 갈수 있는 곳에 숙소를 정해 그곳에서 1박을 했다. 내일부터는 벅찬 일정으로 바삐 움직여야 하며 세워진 계획을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다시 한번 미숙을 독려하고 24:00에 잠이 들었다.
30일 06:00기상하니 머리가 무겁다.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날씨에 기분이 좀 나아진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 앞에서 08:00화엄사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는 30분도 안 걸려 우리를 화엄사까지 데려다 준다. 화엄사를 둘러보고 출발하니 가슴이 벅차다.
지리산 주능선은 서쪽 최고봉 노고단에서 이 산 정상인 천왕봉까지 45㎞ 110리에 걸쳐 있다. 남한의 단일 산 능선 가운데 최장최고(最長最高)의 코스이다. 또 해발 고도가 1,300~1,900m의 고봉준령을 넘나드는 산행 코스이기 때문에 적어도 2박3일은 잡아야 지리산을 구경하며 종주할 수 있다. 그래서 여름 휴가에는 능선상에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여름휴가 때는 같이할 사람들이 있어 힘들어 나 같은 직장인들은 지리능선 종주가 계획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그 꿈을 이루는 첫발을 내딛는데 이 어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소냐!
화엄사계곡 길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는 사실 지리산 여느 계곡과 비교하면 그다지 수려하지않은 평범한 수준이다. 그러나 지리능선의 출발지인 노고단을 오를 수 있는 길 이어서 나름대로 그 몫을 다하고 있다. 울창한 숲길과 초반 이후부터 꾸준한 경사가 몹시 피곤하게 한다. 아마도 지난밤 설레어 잠을 설친 탓인가 보다. 그 절정은 노고단 도로와 만나는 코재에서 빛을 바란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도가 심해 끝을 보며 가는데도 한참 후에나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오른 노고단 도로에서 우리는 황당함을 맛본다. 한대의 관광버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큰 배낭과 지친 모습이 역력한 우리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처다 보며 지나간다. 허탈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취 감이 있으니 다행이다. 도로를 걷다 보니 2층의 노고단 산장이 보인다. 깔끔한 현대식건물의 노고단 산장은 취사장이며 공간이 넓어서 좋다.
우리는 한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준비를 했다. 현재시각이 12시40분을 막 지났다. 이른 아침식사와 배낭의 무게 때문에 많은 힘을 써서인지 몹시 시장기가 돈다. 미숙은 힘이 들어서 인지 밥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의 목적지 뱀사골 산장까지 가려면 4시간은 더 족히 걸어야 하기에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달랬다. 라면에 햄을 넣고 끓여놓으니 조금 전까지 만해도 생각이 없다는 사람이 슬그머니 달려든다. 국물을 조금 마시니 시장기가 더욱 발동하여 라면 맛이 꿀맛이다. 가만 보니 이 여자는 라면그릇에 코를 박고 있다. 우리는 순식간에 코펠을 비웠다.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하니 노고단을 오르는 길이 빤히 나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지리산 8경중 하나인 노고단의 운해를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해본다. 시계를 보니 한시가 넘고있다. 서둘러 출반한 시간은 13시 15분이다.
아래서 올려다보기는 순한 안부처럼 보였지만 쉬었다 걸어서인지 은근히 힘이 간다. 노고단 정상아래로 우회하는 길이 있어 정상아래 둔덕에서 노고단의 운해를 감상하려 했지만 운해는 없으나 그 풍경이 우리를 압도 한다.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며 다음 기착지인 반야봉의 두 봉우리, 주위의 장엄한 산군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 미숙이 먼저 입을 연다. “야! 끝내준다.” 그래 할말이 없다. 그냥 끝내줄 뿐이다.
노고단을 뒤로하고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서 노고단 북사면의 숲속으로 길이 이어져 있다. 이 길은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노고단 북쪽 사면의 숲길을 빠져나가면 전망이 밝게 트이면서 능선 평지길이 나온다. 노고단 정상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돌무덤 비슷한 것이 있고, 비목이 세워져 있다. 지난 70년대에 고교생 3명이 폭설에 갇혀 조난 당하여 그 가운데 한명이 동사했다고 한다. 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1,424봉을 편하게 오르는 능선 길은 전망이 아주 기가 막히다. 남쪽으로는 왕시루봉 능선과 피아골이, 북쪽으로는 만복대 능선과 심원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424고지에 편안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풀밭이 펼쳐진다. 바로 이곳이 돼지령이다.
계속 이어지는 능선 길을 걷다 보면 '임걸령 삼거리'이정표를 만난다. 우리는 잠시 후 임걸령에 도착 하였다. 샘터와 야영site가 군데군데 보인다. 임걸령은 지리산 최고의 야영지다. 이틈에도 한 팀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우리는 샘터에서 수통을 채우고 다시 출발 하였다. 현재시간은 14시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이제부터는 오늘 산행 중 가장 힘이든 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동안 멀리서 보며 처녀궁둥이 같다며 히히덕 거리던 반야봉을 거쳐 화개재로 산행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화엄사 계곡의 상단부도 힘이 들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체력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곳이 더 힘들 것 같다. 편안한 길을 걷다 잠시 후 비탈길을 오르니 노루목이다. 삼도봉으로 직접 가는 길과 반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다. 우리는 주저 않고 반야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참을 더 오르니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올라 잠시 배낭을 내려 놓았다. 그 동안 흐름을 잃을까 봐 잠시 쉴 때면 배낭을 업은 체 적당한 곳에 기대 있었으나 배낭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며 어깨와 허리가 불편하다. 나의 허리를 토닥거리며 불안한 듯 미숙이가 바라본다. 물론 그녀도 50리터 배낭을 매고 산행하는지라 꽤 버거울 텐데 아직도 끄떡없다. 다시 배낭을 업고 한발한발 오르니 반야봉 정상(1,732m)이다.
현재시간 16시00분을 조금 지났다. 노고단에서 보지 못한 운해가 보기 좋게 드리워져 있다. 주위가 온통 나의 발아래 있다. 역시 우리는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은체 빙빙 돌며 장관을 조망한다. 역시 미숙이 먼저 한 마디로 말문을 연다. “진짜! 죽인다.” 그래 반야봉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진짜로 죽인다!” 반야봉의 표지 석은 정사각형의 검은 대리석 돌기둥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엔 반야봉의 높이가 1728m라 적혀 있다. 내가 갖고있는 지형도엔 1733.5m로 되어 있는데 어느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리산 8경중인 하나인 반야봉의 낙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야봉에서 노고단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 장관일 텐데 아직도 두시간은 기다려야 가능한 일이라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내려가고 지금은 바람까지 불어 외투와 방풍 의를 입었는데도 떨린다. 우리는 서둘러 삼도봉으로 하산을 한다. 그래도 벌써 20분 이상을 추운지도 모르고 반야봉에서의 조망에 빠져있었다.
반야봉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이 삼도봉으로 가는 길이다. 삼도봉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작은 무덤이 나오는데 이 무덤은 화개재를 넘나들며 소금을 팔던 소금장수의 무덤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무덤에서 5분 정도 더 걸으면 전남, 경남, 전북의 도경계가 되는 삼도봉이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서는 길은 급한 내리막 길이라 다리가 풀리면 내려오기 부담스러운 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배낭을 잘 꾸려서인지 배낭의 무게 감이 무겁기는 하지만 오히려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곧 화개재에 도착했다. 우선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반기며 황량한 화개재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뱀사골 쪽으로 급경사를 따라 200m쯤 내려가니 소담스러운 뱀사골 산장이 있었다. 우선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무작정 산장으로 들어 갔으나 이미 산장은 만원이 였다. 하여 이곳의 명물인 원두커피 한잔을 사 들고 밖으로 나와 미숙에게 주었다.
시간은 이제17:30분을 넘기고 있었으나 주위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더 어두워 지기 전에 서둘러 바람 없는 목 좋은 Site를 잡아 텐트를 설치했다. 우선 미숙에게 옷을 갈아 입게 하고 침낭을 덮게 하였다. 날씨도 춥고 배도 고프고 하니 오한이 난 듯 했다. 우선 저녁준비를 하는데 이곳은 밤이면 이미 한 겨울 이였다. 김치찌개를 하여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미숙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배시시 웃으며 오늘 저녁이 자기 생에서 가장 멋진 저녁일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토닥거리며 잠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지리산에서 1박을 하였다.
10월1일 새벽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자는 무섭다. 미숙은 벌써 일어나 씻고 몸단장을 다했다. 이 엄동설한에 나는 미숙의 성화에 못 이겨 고양이 세수만 하였다. 미숙이 해놓은 밥에 어제 먹던 김치찌개에 밥을 넣고 같이 끓였다. 나는 산행 시 아침은 항상 이런 식으로 먹는다. 일단 편하기도 하고 밥맛 없는 아침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미숙은 처음에 시큰둥하였으나 맛을 보더니 환장을 한다. 우리는 아침 설거지를 하는 중인데 벌써 어떤 사람은 출발을 한다. 짐 정리를 하고 출발 준비를 마치니 시간이 어느덧 07:10이나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주위는 어둡다. 역시 아침 기온도 엄동설한을 느끼게 하여 옷을 단단히 입고 뱀사골 산장을 출발한다.
몸이 않풀린 상태라서 그런지 화개재 능선까지 올라서는 급경사에서 몇 번을 쉬며 올랐다. 배낭 무게도 축축한 텐트를 그냥 넣어서 그런지 더 묵직해 진 것 같다. 화개재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매섭다. 우리는 고개도 못 들고 계속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진 종주 코스로 걸었다. 한 시간 정도를 쉬다 걷다 하며 오르막을 오르니 이곳이 바로 토끼봉이다. 날씨는 맑은데 먼산의 시계는 좋치않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가 08:15분이 되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계속 주능선을 따라 약4㎞를 더 가면 연하천 산장에 도착할 것 같다. 구상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잡목 숲을 지나면 다시 완만한 능선 안부로 올라선다. 또 힘들게 경사 길을 한동안 오른 뒤 북쪽 사면으로 난 평탄한 길에 이어 돌 밭 길을 지나면 '총각샘' 이정표를 만난다. 미숙이 총각샘을 꼭 마셔야 된다고 하여 남쪽 능선 너머 20여m의 지점에 지리하고 있는 총각샘으로 내려갔다. 총각샘은 커다란 벼랑 아래서 샘물이 솟아나고, 그 앞에 넓은 공터가 있다. 이 총각 샘은 옛날 심마니 노총각이 처음 알고 이용했던 샘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은듯하다. 일부러 들른 총각샘에서 수통의 물을 가득 채웠다.
다시 능선에 올라와 총각샘 이정표를 지나면 다시 경사가 심한 꽤 힘든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 미끄러운 바위 벼랑길을 한 차례만 기어오르면, 다시 완만한 능선 길로 바뀐다. 울창한 침엽수 지대를 따라 오르면 그곳이 바로 명선봉이다. 길은 내리막 흙길로 변하고 아래쪽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가 연하천 산장이다. 연하천 산장은 아담한 건물로 5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시간 11:00분이 다 되어 간다. 우리는 이곳서 배낭을 내려놓고 서로 어깨를 주무르며 한참을 쉬었다. 이곳은 산 속이라 바람도 없어 따뜻하였다. 비로서 몸엔 땀도 베어 있고 몸도 풀려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11:20분 연하천 산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곧 삼정산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편안한 능선 길이 나온다. 얼마 후 삼거리를 만난다. 동쪽으로 계속 이어진 길이 종주 코스로 곧 형제봉에 올라서게 된다.
해발 1,452m의 이 형제봉은 지리산 주 능선의 중간 지점 정도가 된다. 형제봉에서 동쪽으로 얼마간 걷다 보면 특이한 모양의 바위를 만나게 된다. 높이 10m가 넘는 두개의 바위가 맞대고 서있는 듯한 모습이다. 올망 졸망한 길을 걷다 보면 숲길을 빠져 나와 벽소령에 도착한다. 우선 넓은 공터가 시원하게 보인다. 벽소령은 지리산 8경 가운데 하나인 '벽소명월(碧宵明月)'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면 모를까 벽소 명월은 보기 힘들 것 같다. 벽소령은 또 군사 작전 도로가 개설되어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등산로는 능선의 소로 대신 작전 도로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잡목이 많이 우거져 도로라기보다는 오솔길 같다. 얼마 후 작전 도로를 벗어나 덕평봉의 숲 속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부드러운 흙 길이 큰 나무들 사이로 나있지만 오르막길이 한바탕 기운을 뺏는다. 30분 가량 이 길을 쉬면서 오르면 오른쪽으로 길이 꺾이면서 평탄해진다. 덕평봉 남쪽 사면으로 돌아가면 넓다란 평지와 함께 선비샘이 나온다. 현재시각 14:00분이 막 지났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늦은 점심이다. 하지만 오면서 계속 주전부리를 해서인지 그렇게 배는 고프지 않다. 우선 갖고 온 건과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14:20분 선비샘을 출발한다. 선비샘에서 동쪽의 낮은 능선을 넘어선 뒤 칠선봉에 닿기까지 작은 언덕과 같은 능선을 여러 차례 오르내린다. 선비샘에서 전망이 좋은 기암의 칠선봉(1,576m)까지는 약50분이 소요됐다. 우리는 칠선봉에서 지리능선과 주변 산군들을 조망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지리산 주 능선 중 가장 힘든 코스라는 칠선봉을 지난 뒤 영신봉(1,556m)에 닿기까지 한 차례 힘든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 잡고 미숙을 독려하며 영신봉으로 출발을 한다. 현재시각 15:30분 칠선봉에서 두어 차례 암봉을 넘으면 경사가 급한 돌투성이 길이 나타났다. 여기가 가장 힘든 곳인 것 같다. 바위와 나무 뿌리를 잡으며 비탈길을 올라 영신봉 능선에 서니 마치 지리산 주 능선 종주를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신봉 이정표에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곧 세석평전의 드넓은 구릉지가 나타난다. 지금이 봄이라면 철쭉의 낙원이 펼쳐져 있을 터인데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세석평전은 뚜렷이 나타나 보이지는 않치만 사거리이다. 산장 남쪽으로 거림골, 남부능선 루트로 나뉘어진다. 또 산장 북쪽 능선에서 한신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도 나있다. 세석평전에서 다시 동쪽의 촛대봉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간다. 눈앞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 촛대봉은 생각보다 가깝지 않았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어 마음은 급한데 촛대봉은 만만하지 않다. 겨우 촛대봉을 오르니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지리산의 일몰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리산은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미숙과 나는 할말을 잃고 멍하니 십 여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발 1,703m의 촛대봉에 서면 천왕봉이 손에 잡히고 올망졸망한 촛대 바위들이 모여있는 촛대봉의 저녁 노을은 환상 이였다. 현재시간 18:00분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 같다. 아무래도 장터목까지 가려면 한 시간 가량은 야간 산행을 해야 할 것 같다. 촛대봉에서 잠시 비탈길을 내려온 뒤 평평한 능선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 능선 길은 올망졸망한 것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기암 괴석이 어우러진 연하봉의 절경은 이미 주위가 어두워져 보름을 앞둔 밝은 달빛으로 어슴푸레 그림자만 보았다. 이미 시간은 1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미숙이 너무 힘들어 한다. 아마도 기온이 급강하 하고 어두워서 긴장한 탓에 심한 오한이 있는 듯 했다. 마침 불빛이 지나다니는 장터목을 빤히 바라보이는 지점에 넓은 텐트Site가 형성되어 있었다. 살펴보니 일출봉 근처인 것 같았다. 잘됐다 싶어 적당한 곳을 찾아서 텐트를 세우고 미숙에게 젖은 옷을 갈아 입게 하고 역시 몸을 침낭으로 쌓아 주었다. 그리고 급하게 물을 끓여 꿀차를 만들어 마시게 하니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다행이 물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물을 길어와 저녁으로 라면을 끓였다. 어차피 내일 천왕봉 일출은 이곳에서 대신하기로 하니 마음 편하다. 내일은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하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눅눅한 침낭이며 텐트를 정리하고 느긋하게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10월 2일 주위가 환해서야 눈을 떴다. 아뿔싸 일출을 지나쳐 버렸다. 그래도 일출의 끝을 보고자 일출봉 바위로 나갔다. 일출은 이미 지나간 후 이지만 중산리 계곡을 붉으스레 물들인 장관이 일출과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텐트로 돌아오니 새벽잠 없는 미숙이 그제서야 부시시 눈을 뜬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내리고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어제의 산행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아침 준비를 느긋하게 하는 동안 주위의 텐트들은 하나씩 정리되어 청왕봉으로 또는 세석으로 출발을 한다. 남은 부식을 총 동원하여 걸판진 아침을 먹고 침낭과 텐트를 정리하여 침을 꾸리니 09:20분이다.
일출봉을 출발하면서부터는 부드러운 산길이다. 10여분 걸어 내려오니 장터목이다. 장터목은 지리산에서 노고단과 함께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늦은 시각인지라 많이 한가로운 것 같다. 장터목 남쪽 20m 지점에 산희샘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장터목을 출발 하니 경사 급한 돌 비탈 길을 따라 오른다. 제석봉 일대의 고사목 지대를 통과하며 중산리쪽 풍경을 감상도 한다. 마음이 바쁘지 않으니 이렇게 좋다. 제석봉 이정표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서는 곳부터 좌우로 암벽 비탈길이 얼마간 이어진다. 다시 능선 안부를 만나고 숲 사이 길을 따라 오르면 통천문(通天門)이다. 통천문은 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는 무사히 통과 되는 것을 보니 깨끗한가 보다. 통천문을 통과했으니 이제부터는 하늘 위다. 깎아지른 암벽 사이로 사다리가 설치되어있다. 다시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한 고비인 거대한 암벽 비탈과 만난다. 이 벼랑을 올라서면 천왕봉까지 암괴가 걸쳐 있다.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천왕봉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해발 1,915m의 천왕봉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의 종착지 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곳서 갑자기 경건해 지는 듯 했다. 잠시 우리가 2박3일간 걸어온 능선길을 뒤돌아보며 서로가 대견하여 우리는 포옹을 했다. 현재시각 10시 50분 아쉬움을 뒤로하고 중산리 계곡으로 하산을 한다. 로타리 산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가 많아 하체가 많이 피곤하다. 우리는 로타리 산장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중산리로 하산을 하니 현재시간 14시 40분 이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점이며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앞에서는 봉고 승합차가 진주까지 간다며 합승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많이 피곤하기도 하고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타 버스 요금에 비하면 몇 배의 많은 요금을 지불하였지만 아주 편한 마음으로 중산리 마을의 빨갛게 익은 감나무들을 감상하며 잠이 들었다.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기사 아저씨가 깨워서야 비로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진주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이제 내일이면 추석이다.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저녁을 준비한다. 어느새 나에게 기대어 잠든 미숙을 보며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으로 지리산 신령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나도 단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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